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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마음 언어학

Alexander Vovin(2002) - An Old Korean Text in the Man'yoshu 번역 본문

언어학

Alexander Vovin(2002) - An Old Korean Text in the Man'yoshu 번역

La Espero 2019. 12. 2. 08:00

한국과 일본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숱한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특히 고대 일본 문화에 있어서 한국계 국가들의 영향은 막대했는데요, 당연히도 일본 고대 가집 만엽집(万葉集)에도 한국어로 된 노래, 최소한 번안된 고구려·백제·신라 노래가 있으리라는 생각에 자연스레 도달할 것입니다. 알렉산더 보빈(Alexander Vovin) 교수의 논문 An Old Korean Text in the Man'yoshu(만엽집 속의 고대 한국어 텍스트)에서는 그간 일본어로는 도무지 해석되지 않았던 노래가 한국어를 통해 바라보면 쉽게 해석된다는 말을, 곧 그 부분이 고대 한국어로 쓰였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간 많은 학자들이 만엽집이 실은 삼대목이라느니, 만엽집이 고대 한국어로 된 노래집이라느니 하는 식으로 흑화한 탓에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습니다만, 만엽집에서 고대 한국계 국가와 언어의 흔적을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곧바로 저런 비합리와 닿는 것은 아니겠습니다. K-POP에 영어가 섞여 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듯, 「목장길 따라」 같은 번안곡에서 "스타도라 품바" 같은 후렴구 일부를 원어 그대로 부르는 것이 부자연스럽지 않듯, 또 스코트어(Scots)로 된 노래 Auld Lang Syne을 영어로 부를 때에도 다른 부분은 영어로 번역하지만 auld lang syne은 원어 그대로 부르는 것이 자연스럽듯 현대처럼 고대에도 노래에 문화적 강대국의 언어를 섞어 부르거나 원어 일부를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부르는 경향이 있었다고 생각해보면 저런 극단적인 주장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원문은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만엽집 속의 고대 한국어 텍스트

최고(最古)·최대(最大)의 고대 와카집인 만엽집(万葉集)은 8세기 중반에 쓰였으며 읽기 힘든 시도 몇몇 담고 있다. 이들을 해독하기 위한 시도는 몇 세기 동안 계속되어 왔다.

  • 본고에서 일본 고유명사와 책 이름은 헵번식으로, 고대 일본어 자료는 예일식으로 표기하였다. (번역 시에 헵번식으로 표기된 것은 원어를 좇아 적었으며, 예일식으로 표기된 것은 그대로 두었다. - 역주)

그것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시는 바로 9번인데, 누카타노오키미(額田王, 7세기) 공주가 쓴 것으로 만엽집 권 1에 수록되어 있다. 시 전체가 해독하기 어려우며, 특히 첫 두 행이 난해하다.

만엽집에 대한 가장 이른 주석은 8세기의 저명한 승려 센카쿠(仙覚)가 지은 만엽집주석(万葉集註釈)이다. 이에 따르면 9번 시는 다음과 같이 읽어야 한다.

莫囂圓隣之 大相七兄爪湯氣
夕月の仰ぎて問ひし
yupu tukiy-no apug-yite twop-yisi
저녁 달-을 올려다보-며 묻다-과거형
저녁 달을 올려다보며 물었네 (첫 두 행)

吾瀬子之
わが背子が
wa-ga sekwo-ga
나-속격 연인-속격
내 사랑이

射立為兼
い立せるかね
i-tat-as-er-u kane
과거형-떠나다-존대-과거형-분사 감탄사
떠나가셨네, 아아

五可新何本
いつかあはなむ
itu ka ap-anam-u
언제 의문사 만나다-가능성-분사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만엽집, 9)
  • 만엽집주석을 포함하여 몇몇 판본에서는 湯이 아니라 謁으로 되어 있지만, 오바타 기이치로에 따르면 만엽집 원본에서는 湯이었다고 한다(尾畑喜一郎 1986, 30). (이밖에 莫를 草로, 囂를 器로 적은 판본들이 있다. - 역주)
  • 이연숙 역본에서는 첫 두 행을 번역하지 않고 해설에서 萬葉集註釋(澤瀉久孝, 中央公論社, 1982~1984)의 해석 "靜まりし浦浪さわく(잠잠하였던/ 포구의 파도 이네)"를 소개하였다. 나머지 부분은 "나의 님께서/ 서서 계시었겠지/ 저 감탕나무 밑에"로 번역하였다(이연숙, 2012, "한국어역 만엽집 1", 41). - 역주

이 노래의 독법에 전념한 최신 논문(尾畑喜一郎 1986)의 저자인 오바타 기이치로는 일본 학자들이 제시한 10개 이상의 상이한 해석들을 인용하고 있다. 여기서 각 학자들의 해석본은 모두 첫 두 행에서 크게 다르고 나머지 부분에서는 거의 일치한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첫 두 행에서 센카쿠의 주석을 따른 일본 학자는 아무도 없었으며, 나머지 세 행의 해석에서는 센카쿠의 주석에 충실하였거나 적어도 그 뜻은 비슷했다. 첫 두 행을 센카쿠의 주석에 따라 해석하는 것은 일본어로 읽었을 때 절대 불가능하다는 건 명백하다. 이 때문에 일본 학자들은 센카쿠의 주석을 무시하고 이 두 행에 쓰인 한자의 음에 따른 자신만의 해독법을 창안하려 한 것이다.

이 두 행을 센카쿠의 주석과 같은 뜻이 되게 일본어로 읽는 것이 센카쿠 자신에게조차 불가능했다면, 그가 그런 주석을 쓴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는 두 가지 가능한 대답이 있다. 곧, 센카쿠가 난데없이 주석을 제시한 것이거나, 지금은 실전된 전통에 따랐던 것이다. 이 저명한 승려의 인품을 생각했을 때, 저자는 두 번째 답을 선호한다.

본고에서는 두 가지를 증명할 것이다. 첫째, 첫 두 행을 센카쿠의 주석에 따라 읽는 것은 가능하다. 둘째, 첫 두 행은 일본어로 쓰이지 않았다.

이 두 행을 센카쿠의 주석에 따라서는 일본어로도 중국어로도 읽을 수 없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이 부분의 해독에 관한 문제는 이 부분이 어떤 언어로 쓰였느냐의 문제에까지 닿는다. 두 행의 내용도 한자도 알고 있으므로 해답은 간단히 구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이 이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동아시아의 나라들이 자기 말을 한문으로 표기할 때 한자를 훈차했을 뿐 아니라 음차도 했음은 잘 알려져 있다. 더욱이, 대응하는 한자로 번역된 고유어 낱말도 음차 표기에 이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鴨 "오리 압"은 만엽집에서 일본어 조사 ka와 mo가 붙어 있을 때 그를 표기하는 데 사용되었다(고대 일본어 kamwo "오리").

첫 단계는 이 두 행에서 훈독자를 찾는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해서 센카쿠의 주석을 개념어로 나누어 네 낱말 "저녁", "달', "올려다보다", "묻다"를 찾았다. 또한 전체 12자 중에서 가능한 2개의 훈독자, 暮 "저물 모"의 이체자인 莫와 "보다, 관찰하다"를 포함하여 뜻이 많은 相을 찾았다. "달"은 "저녁"과 "보다" 사이에 있어야 하므로, 이 언어의 어순은 SVO가 아닌 SOV라고 가정할 수 있겠다. 이는 이 언어가 "말레이어"형 언어가 아니라 "알타이어"형 언어임을 가리킨다.

따라서 나머지 한자들은 음독자가 되겠다. 하지만 여기서 다른 문제가 생긴다. 만요가나에 대응되는 한자가 之[si]와 氣[key]밖에 없다. 나머지는 만요가나에서도 향찰에서도 용례를 찾아볼 수가 없다. 따라서 이 음독자들의 음가를 해독하기 위해서는 중고 한어 한자음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먼저 之大의 중고음 [tçida']에 주목하였는데, 이 독법은 위를 향하는 행동을 가리키는 한국어 동사접두어 쳐다-(후기 중세 한국어 thi-)와 연결해볼 수 있다. 이는 다음 용례에서 문증된다.

難陁調達ᄋᆞᆫ 象ᄋᆞᆯ 티ᄎᆞ며
Nantta TtywoMttalq-on ssyang-ol thi-cho-mye
난타 조달-주제화 코끼리-대격 치(동사접두어)-차다-동명사
난타와 조달이 (죽은) 코끼리를 올려차며 (월인천강지곡 39)
  • 대응되는 만요가나와 향찰을 찾아보는 것은 자연스러운데, 알타이어적 통사론을 지닌 언어에 사용되었으며 이 노래와 같은 시기에 사용된, 훈차와 음차가 혼합되어 있는 표기법은 이 둘밖에는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 본고에서 중고 한어 한자음은 E. Pulleyblank의 중고음 재구에 따랐다(Pulleyblank 1991).
  • 본고에서 현대 한국어와 후기 중세 한국어는 모두 예일식으로 표기하였다. (현대 한국어는 한글로 전사하였으며, 후기 중세 한국어는 예일식 표기만 적되 인용된 문장에서는 원문도 함께 적었다. - 역주)
  • 후기 중세 한국어 thi-가 원문에는 hi-로 잘못 적혀 있어 바로잡았다. - 역주
  • 석가모니의 아버지인 정반왕(淨飯王; Śuddhodana)의 둘째 아들 난타(難陀; Nanda)와 정반왕의 동생 백반왕(白飯王)의 맏아들 조달(調達; Devadatta)을 가리킨다. 이 난타는 부처의 제자 목우(牧牛)난타 등과 구분하기 위해 손타라(孫陀羅)난타(Sundarananda)라 하기도 한다. - 역주

따라서 之大相을 한국어 동사 chyetapo- < thyetapwo- "쳐다보다, 올려다보다"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이것이 해독의 열쇠로, 이로써 저자는 이 두 행이 고대 한국어나 그와 매우 가깝게 관련된 언어로 쓰인 것이라 가정하였다. 해독의 마지막 단계는 또한 두 행을 센카쿠의 주석에 따라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지 여부를 증명하는 것에 있다.

  • 고대 일본어 문헌이 한국어의 단편을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저자가 처음 한 것이 아니고 박병식(1986, 1987)과 이영희(1990)에서 이미 제안된 바 있다. 그들의 문헌 분석은 작위적이고 몇몇 시들이 심지어 고대 경상도 방언이나 고대 전라도 방언으로 적혀 있다는 결론으로 이끄는데(박병식 1987, 54-102), 저자는 그런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두 학자와 "고대 일본어 문헌 속에 고대 한국어 텍스트가 보존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데에서 원칙상으로는 같은 의견이다.

후기 중세 한국어 nacwo "저녁"은 어말 h를 포함하고 있는 낱말로서, h는 기본형에서는 나타나지 않으나 특정 격표지 앞에서는 실현된다. 囂의 중고음 [xiaw]는 이 [h]에 속격 표지 -ay/oy가 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莫囂는 nacwoh-oy로 읽을 수 있으며, 뜻은 "저녁의"가 된다. nacwoh-oy 형태는 후기 중세 한국어에서 문증된다.

그저긔 粳米ᄅᆞᆯ 아ᄎᆞᆷ 뷔여든 ᄯᅩ 나조ᄒᆡ 닉고
Kucekuy koyngmyey-lol achom pwuyy-etun stwo nacwoh-oy nik-kwo
그때 갱미(멥쌀)-대격 아침 베다-동명사 또 저녁-속격/장소격 익다-동명사
그때에 갱미를 아침에 베면 또 저녁에 익고 (월인석보 권1, 45)

"달"을 가리키는 낱말로 圓隣이 남았다. 후기 중세 한국어로 달은 dol인데, 마지막 자음 l은 隣의 중고음[lin]에서 확인될 수 있다. 하지만 圓의 중고음은 [to]와는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圓은 "둥글다"는 뜻이고 고대 한국어에서 "달"과 "둥글다"는 후기 중세 한국어 tol "달"과 twolyet-ho-/twulyen-ho- "둥글다"를 볼 때 비슷하게 소리났을 것이다. 후기 중세 한국어 [o]는 전기 중세 한국어 [wo]로 거슬러 올라가고 후기 중세 한국어 [wo]는 전기 중세 한국어 [u]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생각해 보면(이기문 1987/1961, 99; 원문에는 전기 중세 한국어 [wo]를 [dʒ]로 잘못 적음 - 역주) 두 단어의 음성적 유사점은 더 커진다. 따라서 이 경우에 圓은 한국어 훈독음을 쓴 것으로 가정할 수 있으며, 圓隣은 tol-on(tol "달" + 주제화 표지 -on)으로 해독할 수 있겠다.

이제 후기 중세 한국어 mwut-/mwul- "묻다"(to ask)가 후기 중세 한국어 mul "물"과 유사한 형태를 띤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곧, 湯 "뜨거운 물"로 이 동사를 적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湯 뒤의 氣의 중고음은 [khɨjh]이며 후기 중세 한국어의 확정형 접미어 -ke-[고영근 1987, 119]로 볼 수 있다. 여기서 다른 문제가 발생하는데, 후기 중세 한국어 -ke-는 의존형태소로 단어의 끝에서 쓰일 수 없고 뒤에 어미가 붙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 뒤에 조사 za가 붙을 수도 있다(Kholodovich 1986-II, 36)(반대 관점은 허웅(1988/1975, 537-538)에 소개되어 있다.). 이 사실은 접미어 -ke-가 예전에는 어미로서 기능할 수 있었다는 간접적인 증거가 된다. 따라서 湯氣는 mwut-ke "물었네"로 해독될 수 있겠다.

마지막 남은 세 글자 七兄爪는 틀림없이 동사 thyetapwo-에 붙은 어떤 접미어를 나타내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 글자 爪(중고음 [tšaw])는 한국어 동명사 -자라 볼 수 있는데, 한 가지 문제는 후기 중세 한국어에서 이 동명사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동명사는 1728년에 -쟈의 형태로 처음 확인된다(유창돈 1987/1964, 647). 兄(중고음 [xwiajŋ])은 후기 중세 한국어 확정형 표지 -ke-로 볼 수 있다.

첫 글자 七의 해독이 가장 어렵다. pwo- "보다", pwo-ni- "보고 있다"(유창돈 1987/1964, 385) 등으로 쓰이는 후기 중세 한국어 진행상 표지 -ni-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七兄爪 세 글자의 해독에 그다지 자신이 없으고 다른 해독도 가능할 것이지만, 센카쿠의 주석을 따르면서 읽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국어로 해독하는 것밖에 없다고 확신한다.

아래에 전체 해독을 적었다. 고대 한국어 음운론이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정확한 음성적 해독은 할 수 없고 대신 가설적인 해독을 하나 첫줄에 제시하였다. 본고의 재구 외에 후기 중세 한국어로 "번역"한 것도, 다른 말로 후기 중세 한국어로 투사된 형태를 둘째 줄에 적었다.

莫囂圓隣之大相七兄爪湯氣
nacuh-oi tolal-in thyeta-po-[ni-ke-ca] mud-ke
nacwoh-oy tol-on thita-pwo-[ni-ke-ca] mwut-ke
저녁-속격/장소격 달-주제화 올려-보다-진행상-확정형-연결형 묻다-확정형
저녁 달을 올려다보며 물었네

아래 세 행은 일본어로 적힌 반면 첫 두 행이 한국어로 적힌 것이 이상해 보일 수 있지만, 대답은 간단하다. 원본이 첫 두 행에서는 보존되었지만 나머지는 한국어 원본이 전해지지 않고 일본어로 번역된 것이다. 일본어 문학 전통에는 시의 일부가 다른 언어로 되었을 뿐 아니라 행 안에서도 언어가 바뀌는 다른 경우도 있다. 하마마쓰추나곤모노가타리(浜松中納言物語; 11세기 후반)에서 그 예시를 찾아볼 수 있다.

さうはみちとをしくもせんり
sau Fa miti towosi kumo senri
푸른 물결[蒼波] 길 멀리 구름 천 리[千里]

はくぶさんふかしとりひとこゑ
Faku bu san Fukasi tori Fitokowe
백무산[白霧山] 깊이 새 홀로 우네 (浜松中納言物語 권1, 153-154)

일부만 일본어로 번역된 것 중에서 중국어 원본이 남은 부분을 밑줄로 표시하였다.

다른 부분은 번역되었는데 원본의 첫 두 행만 보존된 것이 우연이라 보기는 힘들다. 달을 쳐다보는 것은 한국 전통 종교에서 매우 중요한 행위임은 명백하다(Nikitina 1982, 26-28). 향가에서 이와 유사한 예를 쉽게 찾을 수 있다.

咽嗚爾處米
늣겨곰 ᄇᆞ라매
nuskyekwom paramoy
흐느끼며 바라보매

露曉邪隱月羅理
이슬 ᄇᆞᆯ갼 ᄃᆞ라리
isul polk.yaun tolallali
이슬 밝힌 달이

白雲音逐干浮去隱安支下
ᄒᆡᆫ 구룸 조초 ᄠᅥ간 언저례
hoyn kwulwum cwoch.wu.ptekaon en ? alay
흰 구름 따라 떠간 언저리에

沙是八陵隱汀理也中
몰이 가ᄅᆞᆫ 믈서리여ᄒᆡ
mwol.Gi kalon mulseli yehoy
모래 가른 물가에

耆郞矣皃史是史藪邪
耆郞ᄋᆡ 즈ᅀᅵ올시 수프리야
Kilang-oy cuzi isyula
기랑의 모습과도 같은 수풀이여

逸烏川理叱磧惡希
逸烏나릿 ᄌᆡᄫᅥ긔
Ilwo nali-s coyWyek-uy
일오내 자갈 벌에서

郞也持以支如賜烏隱
郞이여 디니더시온
Lang-iye tinitesiwon
랑이 지니시던

心未際叱肹逐內良齊
ᄆᆞᅀᅡᄆᆡ ᄀᆞᅀᆞᆯ 좃ᄂᆞ라져
mozom-oy kuz-hul cwochnalacye
마음의 끝을 따르고 있노라

阿耶栢史叱枝次高支好
아야 자싯가지 노포
aya casi-s kaci nwophwo
아아, 잣나무 가지가 높아

雪是毛冬乃乎尸花判也
누니 모ᄃᆞᆯ 두폴 곳가리여
nwun-i mwotol twuphwol kwoskaliye
눈이라도 덮지 못할 고깔이여
  • 중세 한국어 및 현대어역은 김완진 해독본에 따랐다(김완진 1986/1980, 80). (3행 조초가 cwochwo가 아닌 cwoch.wu로 표기되어 있는 등 로마자 표기가 김완진 중세어역과 다른 부분이 다소 있는데 원문 그대로 두었다. - 역주)

끝으로 누카타노오키미의 어머니가 이즈모국(出雲國)에서 태어났으며 지역 전통에 강하게 매여 있었음을 언급해야겠다(Kodansha Encyclopedia of Japan, 1983, VI, 44). 이즈모 신사는 일본 전통 종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스사노오노미코토(須佐之男命)에게 제사를 바쳤다. 고사기(古史記, 712년)에 따르면 스사노오미코토는 신라에서 이즈모로 왔기 때문에, 이 신사가 한국에 기원을 두고 있거나 한국 전통과 상당히 관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당연하겠다. 게다가, 이즈모 풍토기(出雲國風土記, 713-738년)에 기술되어 있는 구니비키(國引ぎ)라는 신토 의식은 한반도 전통과 강하게 연관되어 있고, 아마 한국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인다(Nikitina 1990 초고). 이러한 언어학 외적인 사실들은 만엽집에 한국어 텍스트가 존재한다는 추가적인 증거가 된다.

  • 이후 2017년에 나온 저자의 만엽집 영역본에서 제시한 해독은 다음과 같다(Vovin 2017, "Man'yōshū: Book 1. A New English Translation Containing the Original Text, Kana Transliteration, Romanization, Glossing and Commentary"). 본 논문의 해독에서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둘째 글자가 囂와 器로 다른데, 본고(Vovin 2002)에서는 h를 포함하는 낱말 nacuh의 말음이 속격표지 oi와 결합한 hoi를 囂(중고 한어 xiaw)로 표기한 것으로 본 반면 책(Vovin 2017)에서는 중세 한국어 nacwoh가 *-k->-h-의 연음화를 거치고 어말 모음이 탈락한 형태로 보아 재구된 고대 한국어 *nacwokʌ에 속격표지 -s가 붙은 형태의 마지막 음절 kʌ-s을 器(후기 상고 한어(LHC) khɨs, 고대 한국 한자음이 후기 상고 한어의 발음을 보존한 경우가 많은 것에서 추론)로 표기한 것으로 보았다.- 역주
莫器圓隣之 大相七兄爪湯氣
NACOkʌ-s tʌrari thi-ta-PO-n[i]-isy-a=ca mut-ke
저녁-속격 달 동사접두어-연결형-보다-과거형/한정형-[명사화]-있다-연결형=강조 묻다-확정형
저녁 달을 올려다보며 물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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