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

Alexander Vovin(2013) - From Koguryǒ to T’amna 번역

La Espero 2019. 11. 4. 13:36

고대 한반도의 언어 분포에 관해 고찰한 알렉산더 보빈 교수의 From Koguryǒ to T'amna(고구려에서 탐라까지)를 번역해 보았습니다. 언어학적 지식이 부족해서, 영어 실력이 미천해서 의역한 부분도 많고 번역투도 심하며, 뜻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거나 오역한 부분도 있을 것이니 지적해주시면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유명한 논문이니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고대 국어에 관심 있는 분들이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원문은 여기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벡위드 교수의 고구려-일본어족 가설은 보빈 교수에 의해 반박되었고 현재는 적어도 고구려어, 백제어, 신라어는 한국어족에 함께 속한다는 것이 학계 주류인 것 같습니다. 본 논문에서는 한반도 남부에 일본어계 언어를 사용하던 사람들이 살고 있다가 한국어족들의 침입으로 인해 일본 열도로 쫓겨나거나(야요이인의 선조) 한반도에서 한국어족에게 동화되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요, 오해하시는 분들이 계실까봐 말씀드리지만 그렇다고 해서 임나일본부설을 지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보빈은 다른 논문에서 한반도에 일본어족계 국가들이 존재한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 중앙 정부의 통제 하에서 행정력이 미치지는 않았다고, 오히려 일본에도 한국어족이 진출하여 몇몇 국가를 형성하기도 했다고 말합니다.

참고사항 : 문맥에 따라 원문의 Japonic은 일본어족 혹은 일본어로, Korean은 한국어족 혹은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이때 한국어는 물론 현대 한국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어족에 속하는 당대의 언어를 말하는 것이며, 일본어는 류큐를 포함한 현대 일본에서 사용되는 언어들뿐 아니라 본고에서 주장하고 있는 바와 같이 한국어의 침입 이전 시기에 한반도에서 쓰이던 언어까지 널리 포괄하는 뜻으로서의 일본어족에 속하는 특정한 언어를 가리키는 말로 쓰입니다. 또한, 접두어 Proto-는 한국조어, 일본조어 등과 같이 원시-보다는 -조어로 옮겼습니다.

참고사항2 : 한국어는 원문에서 로마자로 표기되어 있는데, 현대 한국어 지명은 매큔-라이샤워식을, 언어자료·사료명·인명은 예일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각 표기법에 대한 정보는 위키백과 등을 참고하세요.

* 본 번역은 원저자 Alexander Vovin 교수님의 허가를 받고 게재되었습니다.


고구려에서 탐라까지

한국조어 화자들과 함께 남쪽으로 서서히 말을 달리다

본고는 신라어와 백제어에는 존재하나 고구려어에는 없는 일본어 기층(substratum)에 관해 약술하는 한편으로, 그와 같은 언어 분포에 대한 새로운 증거도 소개하고 있다. 고구려어에 대해서는 중국 사서에 기록된 단어들과 추가적으로 만주어에서 확인된 한국어 차용어를 증거로 들 수 있을 것이며, 백제어에 관해서는 양서(梁書)에서 증거를 찾을 수 있다. 한편, 신라어에 관해서는 전통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것으로 여겨져 왔던 삼국사기의 지명들로부터 새로운 증거를 찾았다. 본고에서는 이들 중 많은 수가 일본어족 계통이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마지막으로, 제주도의 옛 지명인 탐라에 대한 일본어 어원을 제시하고자 한다.

1. 개요

본고는 Vovin(2005, 2006, 2007b, 2007c)에서 제시한 한반도 일본어 기층의 한계에 관해 논하는 한편으로, 한국조어의 확산에 대한 옛 이론들을 요약하고 저자의 이론에 대한 추가적인 새 증거를 찾고자 한다. 요컨대, 본고에서는 한국조어 화자들이 북쪽(정확히는 중남부 만주)에서 내려온, 대 이주 시기 동안 내륙아시아(Inner Asia) 부족들과 접촉하여 기마술을 배운 정복자였을 것이란 이론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한국 신화, 특히 주몽 신화를 통해서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일본어 화자의 보병들은 한국어 화자의 중갑기병에 더 이상 맞서 싸우지 못하고 두 가지 선택, 곧 새로운 지배자를 받아들이든지, 혹은 수평선 너머의 섬(일본 열도)으로 이주하든지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우리는 단지 그들 대부분이 대한해협을 넘어갔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잔존을 선택한 이들도 많았는데, 이들은 결국 한국 주민의 주류가 되었다. 이는 몇 세기 동안 일어난 긴 과정이었는데, 아마 북부와 서남부에서 동남부에 비해 더욱 빨리 이루어졌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한반도에서 한국어의 전파는 북부에서 남부로 진행되었다.

기존 이론의 관점에서 자료를 분석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이론의 확인에 요구되는 자료의 위조와 조작을 부를 것이기 때문에, 이론은 자료의 면밀한 분석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한국어와 일본어족 자료들을 ‘알타이’ 이론에 무리하게 끼워맞추려고 한 두 가지 시도, Starostin et al.(2003)과 Robbeets(2005)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삼국사기 권34 ~ 권37에 기록된 지명은 고구려와 백제의 언어 연구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맡고 있으며, 다른 증거들은 거의 무시되다시피 하고 있다. 그 동안 신라어는 오로지 신라 향가 기반의 연구만 진행되었을 뿐 다른 자료들은 도외시되어 왔다. 실상 삼국의 언어와 방언에 대한 자료는 다음 네 가지 분류로 나뉠 수 있다.

  1. 실제 텍스트
  2. 해외 텍스트 속의 해석 (중국 사서에서 한국어 낱말의 뜻과 소리를 기록한 것 따위를 말함 - 역주)
  3. 인접 언어들로의 차용어
  4. 지명과 다른 고유명사

넷 중에 실제 텍스트가 가장 중요하다. 연구 대상 언어로 된 텍스트는 가장 믿을 만한 자료이다. 지명은 반(反)역사적이기 때문에, 차용어(특히 기록된 차용어)보다 낮은 신뢰성을 지닌다. 다시 말해, 우리는 다른 독립적인 증거 없이 어떤 언어가 개별 정치체에 이르는 지명들에만 보존되었다고 단언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지명에의 배타적인 의존은 잘못된 결론에 이를 수 있다.

고구려어로 불리는, 일본어족 계열로 보이는 삼국사기 지명은 실제 고구려어를 반영한다기보다는 고구려 이전의 언어를 보여주고 있다(반대 주장에 대해서는 Beckwith(2004)를 참조). 일단 지명의 악순환에서 벗어난 고구려어에 관한 증거에 도달하고 나면, 약간이라도 일본어적인 것은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고구려 명문(銘文)과 여진어·만주어 따위 인접 언어들의 차용어들로부터 얻은 증거들은 고구려어가 고대 한국어의 변이형임을 강하게 지지하고 있다(Vovin 2006a, 2006b, 2007b). 저자는 이전에 백제의 양층언어 현상에 관해 많은 증거를 보지 못했던 탓에 백제의 한국어-일본어 양층언어 현상에 대한 고노의 이론(河野六郎 1987)에 반대했지만(Vovin 2006a), 본 논문에서 기존의 주장을 어느 정도 철회할 것이다, 백제어에서 일본어 기층에 관한 몇몇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지지 사례들은 그리 설득력이 있지 않다. 반대로, 신라 지역에서는 일본어에서 한국어로의 점진적인 전환이 보인다(Vovin 2007b).

2. 기존의 증거

몇몇 출판물들에 산재되어 있는 기존의 증거들을 요약하여 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적절한 토의들은 전술한 논문들에서 찾을 수 있다.

2.1 고구려어

다른 퉁구스어에서 나타나지 않는 만주어·여진어의 한국어 차용어들은 이들이 몇몇 한국어 변이형들로부터 차용되었다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만주·여진의 조상은 고구려와 발해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 이는 놀랍지 않다. 한편 만주어·여진어에서 한국어에서는 발견되지 않으면서 일본어족 차용어 혹은 일본어족 계통으로 보이는 낱말은 보이지 않는다. 다음 표를 보라.

고구려 명문에는 몇 개의 비(非)한문 형태론적 표지가 있다. 이들은 모두 일본어와는 닮지 않았으나 이들 가운데 두 개는 명확한 한국어 대응이 존재한다.

2.2 백제어

기존에 논의된 바 있는(河野六郞 1987, Bentley 2000, Vovin 2005), 주서(周書)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수록된 백제어 어휘 항목 대부분은 고노(河野六郞 1987)의 백제 양층언어 현상을 실증하지 못한다. 이는 다음 표가 실증하는 것과 같이, 일본어족 대응은 있으나 한국어 대응은 없는 어휘항목들마저도, 한국과 밀접하게 접촉한 것으로 알려진 고대 서부 일본어 혹은 중앙 일본어족에 국한되는 분포를 보이기 때문이다. 이 규칙을 따르지 않는 경우는 섬, 곰 등과 같이 한국어와 일본어족 양쪽에서 나타나는 낱말들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기(下記)할 바와 같이 고노가 주장한 백제에서의 한국어-일본어 양층언어 가설은 현재 증거의 박약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인 토대를 갖추고 있다. 결정적인 증거는 고노(河野六郞 1987)에서 인용되지 않았다.

2.3 신라어

3세기 위지(魏志)에 수록된 진한어 낱말과 7세기 양서(梁書)에 수록된 신라어 낱말을 비교해 보면, 일본어족 어휘에 비해 한국어족 어휘가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을 실증할 수 있다. 이는 아래 표4에 나타내었다. 6~7세기 향가는 틀림없이 일본어가 아닌 한국어로 쓰였다는 사실에서, 한반도 동남부의 일본어족 기층 언어는 당대에 더욱 소외되어 아마도 몇몇 시골 공동체에서나 명맥을 이어갔을 것이란 결론에 무사히 도달할 수 있다.

3. 새로운 증거

3.1 고구려어

먼저 몇몇 고구려어 낱말의 한문 전사 자료를 보자. 위서(魏書)에는 6세기 중반 고구려의 몇몇 칭호가 한문 해석과 함께 기록되어 있다.

其官名有謁奢太奢大兄小兄之號
그들의 공식 직함은 ʔyʌt śæ ‘큰형님’과 thajH śæ ‘작은형님’이었다. (위서 권100: 2215)

이 구절로부터, 한문 전사 자료에 기록된 세 고구려어 낱말을 추려낼 수 있다.

(a) 謁 /ʔyʌt/ ‘큰.’ 이에는 대응되는 일본어족 낱말이 일본어에도 류큐어에도 없다. 여기의 ‘큰’이 크기보다는 연장자의 개념으로 쓰였기 때문에, 중세 한국어 :녯(nyey-s; 옛, ‘나이 든’)을 바로 떠올릴 수 있다. 당대 중국어는 어말 -s가 없었기 때문에, 한국어 여격 -s가 -t로 전사된 것은 자연스럽다. 중세 한국어의 어두 n-의 부재를 설명하는 것은 더 어렵지만, 가능한 설명은 현대 한국어와 같이 고대 한국어의 고구려 방언에서는 n- > 0- /_y,i 규칙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 가정은 부여어로 故城(고성, 오래된 성)이 濊城/ʔyʌs/이라 불렸다는 점에서 지지된다. 대안적 어원으로서는 만주어 aya-n '큰'을 들 수 있는데(Cincius 1975: 21), 이 낱말은 다른 퉁구스어나 몽골어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퉁구스어나 몽골어에서 어원을 찾을 수 없이 고립된 만주어·여진어 낱말은 Vovin(2006b)에서 실증한 것처럼 그 기원을 거란어 혹은 고대 한국어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큰’에 대응되는 거란어는 <m.o>이다(Kane 2009:85). 이는 만주어aya-n이 거란어와 연관되어 있지 않고 고대 한국어 기원을 갖는다는 사실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어말 자음군 *-tn은 만주어에서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에서, 만주어 aya-n으로 차용된 가설적인 고구려어 형태 *aya(t)n ‘큰’에 도달할 수 있다.

(b) 太 /thajH/ ‘작은’. 이 경우에도 일본어족에서는 일본어든 류큐어든 비교할 만한 것이 없지만, 전기 중세 한국어 낱말 亞退 /ʔa-thʌjH/ ‘작은, 어린’(계림유사 # 343)과는 비교할 만하다. 어두음 소실은 한국어 역사상 흔한 현상이다. (참고: 전기 중세 한국어 흐근(huku-n; 黒根) ‘큰’(계림유사 # 348) > 중세 한국어 큰(khú-n)) 따라서 특정 방언에서 *atay > tay의 발달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c) 奢 /śæ/ ‘형’. 고대 서부 일본어 se ‘형’과 완벽하게 대응되는 것이 단번에 보인다. 다음문장을 참고하라.

可良國尓和多流和我世
Kara KUNI-ni watar-u wa-Nka se
한국 나라-장소격 건너다-한정어미 우리-소유격 형
‘한국에 건너간 우리 형’ (만엽집 권15:3688)

그러나 여기엔 한 가지 큰 문제점이 있다. se ‘형’은 중앙 일본어와 대개 고대 서부 일본어에 국한되어 나타나며, 중고 일본어에서 나타나는 몇몇 증거들도 대부분 시에 국한된다. 류큐어에서는 Izena śi:dja, Tonoshiro śi:dja 등 ‘손위 형제’의 형태 배열이 발견되지만(内間直仁·新垣公弥子 2000: 359), 고대 서부 일본어 se와 모음 자질이 일치하지 않을뿐더러(고대 일본어 e의 반영으로서는 i가 아닌 ï가 되어야 한다.), 고대 서부 일본어에서 설명되지 않는 분절 -dja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 류큐어 낱말은 고대 서부 일본어 se와 동계어가 될 수 없다. 근대 한국어 형은 전기 중고 한어 *xjwæŋ의 차용으로 여겨지지만, 이에는 몇 가지 어원적 문제가 있다. 먼저, 兄의 한국 한자음은 동국정운에서 ‘ᄒᆑᇰ(hywyeng)’으로 나타나고 있다. 둘째로, 중세 한국어 텍스트에서 兄의 음은 兄흉ㄱᄠᅳ디(hywung-k ptut-i; 형의 뜻이, 용비어천가 8장)에서처럼 ‘흉’으로 나타난다.

문제는 근대 한국 한자음이 흉이 아니라 형인 이유다. 이는 아마도 한자어와 고유어 간의 오염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이 오염 때문에 형이 실은 고유어일지도 모르는데도 한자어로 받아들여졌을 가능성이 있다. /hy/ 순열이 /s/나 /ś/로 쉽게 바뀐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고구려어와 서부 일본어에서 형을 가리키는 낱말은 둘 다 한국어 기원을 가질 것이다.

7세기 초에 편찬된 주서(周書)에서 고구려어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其冠曰骨蘇
그들은 관을 kuət-suo라 부른다. (주서 권41: 885)

이에 대해서는 일본어든 류큐어든 일본어족에서 비교할 만한 단어가 없다. 한편으로, 중세 한국어 곳갈(kwòskál)의 첫 부분 곳-(kwòs-)은 고구려어 kuət-suo를 연상시킨다. 고구려어 kuət-suo는 아마도 중세 한국어 곳-(kos-)에 대응되는 *koso의 반영일 것이며, 한국어 사상 아주 흔히 일어나는 둘째 음절의 말음 탈락에 의해 형성되었을 것이다. 중세 한국어 곳갈은 명백히 복합어로 보이지만, 남은 부분 -갈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가 문제로 남아 있다.

3세기 말에 편찬된 위지(魏志)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溝漊者句麗城也
Kolo는 (고구려어로) ‘성’을 뜻한다. (위지 권30: 843)

한어 전사는 물론 kolo와 koro를 모두 가리킬 수 있다. Beckwith는 이를 고대 일본어 kura ‘창고’ 및 kuruma ‘수레’(Beckwith는 ‘바퀴’로 잘못 분석했다.)와 비교하고자 했지만(Beckwith 2004, 127), 음운론·형태론·의미론적인 이유로 둘 다 용인 가능하지 않다. 먼저, 고대 일본어 kuruma에서 -ma가 접미사라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둘째로, 일본조어 *o > 고대 일본어 u의 상승에 의한 *koroma > kuruma에 대한 어떠한 증거도 없다. 셋째로, *kora > 고대 일본어 kura에 대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참고: 후기 중세 일본어 fo-kora(우지슈이 이야기(宇治拾遺物語)) ‘작은 사원’(직역하면 곡물 창고의 귀)), 마지막 음절에서 고대 일본어 -a와 고구려어 -o의 관련성은 특이하여 설명을 요구한다. 마지막으로, 의미론적 비교는 kuruma ‘수레’와는 단순히 불가능하고, kura ‘창고’와는 지나친 비약이다. 이것은 중세 몽골어 qoto-n, 만주어 hoton ‘성채, 요새화한 주거지, 마을’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그저 내륙 아시아의 유명한 반더보르트(Wanderwort; 여러 언어권에 차용되어 널리 퍼지게 된 단어 - 역주)일 것이다. 곧, 이것은 차용어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고구려어 koro ‘성’이 *koto로부터 한국어에서 특이적으로 나타나는 모음간 연음화 -t- > -r-에 의해 유도된 것이라는 점이다. 이 연음화는 일본어족에서는 어떤 단계에서도 나타나지 않으며, 따라서 우리는 한국어에서 유래하지 않은 낱말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 한국어에서만 특이적으로 나타나는 음운론적 과정이 고구려어의 한국어적 특성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명이나 인명 같은 고유명사를 취급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여겨진다. 그렇지만, 이 고유명사의 실제 의미를 알고 있다면 고유명사로부터 증거를 제공받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이는 삼국사기의 지명들을 가지고 행해진 선행 작업들의 표준 방법론이었다. 저자는 본고에서 지명을 더 이상 다루지는 않을 것이며, 대신에 고구려의 창업주 주몽의 이름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중국 자료들에서 이 이름은 朱蒙(위서 권100: 2213)으로 처음 나타났으며, ‘활을 잘 쏘는 사람’(善射)이라는 뜻이 주석으로 달렸기에 우리는 이 고유명사의 실제 의미를 알고 있다. 朱에 후기 상고 한어 ṭio > 전기 중고 한어 ṭju와 후기 상고 한어 tśo > 전기 중고 한어 tśju의 두 가지 음이 있기 때문에 음성학적 특질의 해석에 문제가 있다. 다행히도, 위서 편찬보다 한 세기 앞선 고구려 광개토대왕릉비에서 같은 이름을 鶵牟로 적고 있다. 鶵(후기 상고 한어 dẓo > 전기 중고 한어 dẓju)는 권설음 초성 ṭ를 포함하는 ṭio 음을 확인해주고 있다. 권설음의 선택은 물론 우연이 아니며, 후기 상고 한어도 전기 중고 한어도 치음 /t/와 그에 뒤따르는 /i/로 구성된 *ti를 음절 목록에 포함하고 있지 않지만 /ṭi/, /tsi/, /či/는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 고유의 음절 /ti/는 예외적으로 권설음 초성을 갖는 음절로 적는 것이 선호되었으며, 이는 향찰과 만요가나 A에서 모두 증명된다. 향찰과 만요가나 A는 몇몇 한반도 문자 체계(아마도 백제어)에서 유래하고 있다. 그 결과, 朱蒙의 첫 글자 朱 /ṭio/ tio는 중세 한국어 :둏-(tywoh-) ‘좋다’에서 확인된다. 한국어 구조에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늙다리(늙-+다리), 밉상(밉-+상), 중세 한국어 ᄇᆞᆰ쥐(pòlk-cwúy, ᄇᆞᆰ-+쥐; 구급간이방 권6.68a), 전기 근대 한국어 비뷔활(pipuy-hwal, 비뷔-+활; 역어유해 45b), 붓돗 ‘부뚜’ (붗-(pwuch-) ‘부채질하다’+토ᇧ(twosk) ’깔개’; Martin 1996:12-13) 등에서 볼 수 있듯 용언의 맨 어간이 복합어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좋-’ 부분은 처리가 되었다. 유감스럽게도, 두 번째 蒙 moŋ 혹은 牟 mu 부분은 한국어뿐 아니라 다른 인접 언어들에서도 ‘궁수’로 해석되지 않는다. (중세 몽골어 mergen ‘궁수’가 있지만, 고구려어 moŋ 내지 mu와 연결짓기에는 무리가 있다.)

따라서, 중국 자료에 보존된 고구려어 낱말은 한국어 어원만을 가지며, 어떠한 일본어족 어원도 갖지 않는다.

만주어·여진어에서 다른 퉁구스어에 동계어를 갖지 않는, 고대 한국어 변이형(아마 고구려어 내지는 발해어)으로부터 차용된 낱말 네 개를 더 소개한다.

  1. 중세 한국어 ᄇᆞᆰ-(pólk-) > 만주어 bolgo '밝은'
  2. 중세 한국어 져비(:cyepì) > 만주어 cibin. 여진어 šibihin (淸瀨義三郞 1997:107), 만주어 sibirgan '제비'도 발견되는데, 특히 sibirgan은 cibin '제비' + guldargan '제비'로부터의 신조어일 것으로, guldargan은 만주어에서 고립되어 있다.
  3. 중세 한국어 가지(kàcí) > 만주어 hacin. 이는 다른 퉁구스어들로부터도 증명된다. 솔론어 xashī '종류' 네기달어 xačin '다양한' 오로치어 xači~xačin '종류' 우데게어 xasi '종류' 울차어 xači(n-) '종류' 오로크어 xatči(n-) '다양한' 나나이어 xačī '다양한'(Cincius 1975:465). 하지만 내륙 퉁구스적 관련성은 이들 모두가 만주어로부터의 차용이란 것을 보여준다. 만주어 x-는 실제 동족어에서 다른 퉁구스어의 k-에 해당한다(Cincius 1949: 215). 또한 이것은 여진·만주와 거의 접촉하지 않은 어원어, 아르만어나 제한된 접촉만 이루어진 어웡키어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반면, 이 단어를 갖는 언어는 모두 여진·만주와 접촉하였다는 사실에서 가치가 있다.
  4. 중세 한국어 빛(pích) > 여진어 buco 만주어 boco. 여진어 tiko > 만주어 coko ‘닭’에서 보이는 모음 변화를 생각해 볼 때, 여진어 *bico가 증명되지는 않지만 *bico > buco > boco와 같은 변화 과정이 tiko > coko의 변화 이전에 순음 환경에서 진행되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3.2 백제어

양서에는 백제어 단어에 대해 다음 두 구절이 기록되어 있다.

號所治城曰固麻謂邑曰檐魯。。。襦曰複衫袴曰褌
도성을 kuo-ma라 하고 고을을 yam-luo라 한다 ... 저고리를 pjuk-ṣam라 하고 바지를 kwjən라 한다. (양서 권54.804-05)
  • 固麻 kuo-ma ‘도성’. 대응되는 한국어 어원이 없다. 고대 일본어 köm- '안에 넣다', ka-kom- '에워싸다' 등을 볼 때 아마도 가설적 일본어 *köma ‘울타리 안’에서 왔을 것이다.
  • 檐魯 yam-luo ‘고을’. 대응되는 한국어 어원이 없다. 고대 일본어 ya '집', marö '원(圓)'을 볼 때 아마도 가설적 일본어 *ya-maru ‘집의 원’에서 왔을 것이다.
  • 複衫 pjuk-ṣam ‘저고리’. 대응되는 한국어·일본어 어원이 없다.
  • 褌 kwjən ‘바지’. 대응되는 한국어·일본어 어원이 없다.

증거가 단지 두 단어에만 국한되어 있어 확실하지는 않지만, 백제어도 신라어처럼 일본어 기층을 갖고 있었을 수 있다. 증거가 몇 개 남지 않은 것은 아마 한국어 화자들이 신라보다 백제를 먼저 정복했기 때문일 것이다.

3.3 신라어

일본어처럼 보이는 고구려와 백제 지명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지만(이기문 1963, 村山七郎 1963, 도수희 1987-2000, Beckwith 2004, 최남휘 2005 등), 신라 지명에 대해서 이러한 연구가 없었다. 이는 분명 이해할 수 있는 실제 신라 고대 한국어 텍스트의 존재로 인해 향가 연구가 주가 된 탓이다. 본고의 목표는 신라의 본래 영토를 다루고 있는 삼국사기 권34의 신라 지명을 분석함에 있다. (여기서 가야의 본래 영토는 제외하였다.)

고구려와 백제 지명과 비슷하게, 신라 지명도 다양한 언어 계층의 강력한 혼합을 시사하고 있다. 일부는 의심의 여지 없이 한국어로 되어 있지만, 나머지는 한국어가 아니거나, 최소한 불투명하다. 고구려와 백제 지명처럼 신라 지명도 경덕왕 통치기에 한화(漢化)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음차와 훈차로 이중표기된 고구려 지명과는 달리, 신라와 백제는 훈차 표기된 지명이 많이 없다. 더욱이, 경덕왕 시기에 한화된 지명들은 옛 지명의 번역이라기보다는 대부분 완전히 새로 지어진 것이다. 이는 분명히 의미 분석을 힘들게 하고, 추측에 가깝게 만들고 있다. 그렇지만, 본고에서 논한 것처럼 음차 지명을 알려진 언어로 논란의 여지 없이 읽는 것도 때때로 가능하다. 이 경우, 이 지명 중 일부는 분명히 일본어다.

훈차표기가 있는 일본어식 지명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雲峯縣本母山縣或云阿莫城景徳王改名
운봉현은 본래 모산현 혹은 아모(amo)성이었는데, 경덕왕 때 이름을 고쳤다. (삼국사기 권34: 11a)
  • 중세 한국어에는 어미(émí; 석보상절 권6: 1b) 또는 어마님(émà-nǐm; 용비어천가 90)이 있다. 이는 모음이 맞지 않지만 어느 정도 비슷하다. 한편 고대 서부 일본어 amo(일본서기가요 82), 고대 동부 일본어 amo(만엽집 권20.4376-78, 4383) ‘어머니’와는 동일하다.

清川縣本薩買縣景徳王改名
청천현은 본래 살매(sat mε)현이었는데, 경덕왕 때 이름을 고쳤다. (삼국사기 권34: 5a)
  • sat mε는 분명 한국어 낱말로는 보이지 않지만 일본어로는 분석할 수 있다. mε ‘내’는 류큐조어 *me ‘물’ 및 고대 서부 일본어 mî-Ntu와 동계어이며, sat ‘맑은’은 고대 서부 일본어 satô-si ‘밝히다’와 비교해봄직하다. 신라어 mε ‘내’를 중세 한국어 믈(mul)과 연결시키기에는 모음이 다르고 마지막 자음의 존재 때문에 뒷받침되지 못한다.

훈차표기가 없는 일본어식 지명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化昌縣本知乃彌知縣景徳王改名
화창현은 본래 지내미지(tinəmiti)현이었는데, 경덕왕 때 이름을 고쳤다. (삼국사기 권34: 3b)
  • tinəmiti는 분명 한국어 낱말로는 보이지 않지만 일본어로는 쉽게 분석할 수 있다. 곧, 속격 조사 -nö [nə], mîti ‘길’로부터 ti-nö mîti를 얻을 수 있다. 고대 서부 일본어 ti는 '피, 우유, 아버지, 힘'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힘'은 복합어에서만 보인다.) '강한/견고한 길'로 분석하는 것이 제일 그럴 듯하다.

道安縣本刀良縣景徳王改名
도안현은 본래 도량(tora)현이었는데, 경덕왕 때 이름을 고쳤다. (삼국사기 권34: 5b)
  • tora는 분명 한국어 낱말로는 보이지 않지만 일본어로는 고대 서부 일본어 tôra '호랑이'로 쉽게 번역할 수 있다.

西畿停本豆良彌知停景徳王改名
서기정은 본래 두량미지(turamiti)정이었는데, 경덕왕 때 이름을 고쳤다. (삼국사기 권34: 9b)
  • turamiti는 분명 한국어 낱말로는 보이지 않지만, 일본어로는 고대 서부 일본어 tura ‘앞, 얼굴’과 mîti ‘길'로 쉽게 번역할 수 있으며, 따라서 tura miti 정(停)은 ‘앞길에 있는 정’이다.

單密縣本武冬彌知一云曷冬彌知景徳王改名
단밀현은 본래 무동미지(mutuŋ miti) 혹은 갈동미지(katuŋ miti)였는데, 경덕왕 때 이름을 고쳤다. (삼국사기 권34: 4a)
  • mutuŋ miti나 katuŋ miti나 한국어 낱말로는 보이지 않는다. 상기한 바에 따라 miti는 고대 서부 일본어 mîti '길’과 동계어이다. 고대 서부 일본어는 음절말 자음이 없었음을 염두에 두면, mutuŋ은 고대 서부 일본어 mutu '친밀한, 가까운'과 비교해볼 수 있다. 따라서 mutuŋ miti는 ‘은밀한 길’이다. 경덕왕이 지은 단밀(단지 은밀함)에도 일부 보존되어 있다는 데서 그리 불가능한 지명은 아닐 것이다. katuŋ miti는 고대 서부 일본어 kate- ‘합치다’ + mîti ‘길’로 번역할 수 있으며, ‘합쳐지는 길’이다.

    • 고대 서부 일본어 kate- ‘합치다’는 모음 동사로, 한정형은 kat-uru이다. 일본어족 신라어 katuŋ은 후행 비음 앞에서의 kat-uru > kat-uŋ의 변화가 일어났거나, 혹은 더 현실적으로 신라의 일본어족 기층어의 동사 활용에서 한정형이 고대 서부 일본어와 다른 형태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신라 지명에서 나타나는 일본어 형태론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中畿停本根乃停景徳王改名
중기정은 본래 근내정이었는데, 경덕왕 때 이름을 고쳤다. (삼국사기 권34: 9b)
  • 아마 根과 停은 훈차 표기로 보이지만, 가운데 乃 /nə/는 의미를 갖지 않기 때문에 음차로 보인다. 한국어에 기반한 설명은 가능해 보이지 않지만, 고대 서부 일본어 계사 n-의 한정형 n-ö와 연관짓는 데는 그리 상상력을 많이 요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 뜻은 아마 '뿌리 역' 내지는 '주된 역'일 것이다.

神光縣本東仍音縣景徳王改名
신광현은 본래 동잉음현이었는데, 경덕왕 때 이름을 고쳤다. (삼국사기 권34: 8b)
  • 東과 音은 훈차 표기로 보이지만, 가운데 仍는 의미를 갖지 않기 때문에 음차로 보인다. 仍의 후기 상고 한어 발음은 nəB으로, 고대 서부 일본어 속격 조사 -nö [nə]와 비교할 수 있다. 따라서 뜻 ‘동쪽의 소리’를 얻는다.

平山縣本平西山縣景徳王改名
평산현은 본래 평서산현이었는데, 경덕왕 때 이름을 고쳤다. (삼국사기 권34: 10a)
  • 平西山을 ‘평평한 서쪽 산'으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西 /se/ (후기 상고 한어 sei)를 한정형으로도 기능할 수 있는 한정형용사형인 (Martin 1987: 807-09) 고대 서부 일본어 -si로도 분석할 수 있다(Vovin 2010: 429, 461-66). 따라서, 平西는 분명히 훈차와 음차의 혼합으로서 PÎRA-se일 것이며, 뜻은 '평평한'이다.

    • PÎRA-는 일본어에 기반을 두고 잠정적으로 읽은 것이다.

위의 신라 지명에서 발견한 일본어적 요소들은 아래 표에 정리되어 있다.

삼국사기 권34의 신라 일본어 지명들과 위서와 양서에 실린 진한·신라 일본어 어휘들은 Unger(2005, 언어학 외적 방법에 기반을 두고 있음)와 Vovin(2007, 언어학적 자료에 기반을 두고 있음)이 제안한, 원래 신라 영토에는 한국어족에 끝내 동화되고 만 일본어족 기층어가 있었다는 설을 지지하고 있다.

주로 한강 유역에서 발견되는, 일본어처럼 보이는 의사-고구려어 지명으로부터의 증거와 종합하면(村山七郎 1963, 이기문 1963, 도수희 1987-2000 등), 한강 유역에서 한반도 최남단에 이르는 한반도 남부의 언어사는 같은 패턴을 따르고 있다. 곧, 현실적인 목적으로 고대 한국어라 부를 수 있는, 한국어와 연관된 언어들에 의해 일본어족 언어들이 점진적으로 대체되었다는 것이다.

3.4 탐라

신라에서 천천히 진행된 일본어의 퇴출(Vovin 2007c) 이외에도, 제주도에서 일어난 일본어의 한국어로의 가능한 전환도 흥미로운 사례이다. 이전에 제주어의 일본어적 요소에 관해 쓴 적이 있지만(Vovin 2003, 2010), 본고에서는 제주도의 지명에 대해 다루어볼 것이다. 15세기까지 제주도는 한국과 조공 관계만 맺고 있는 독립 왕국이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 고대 왕국의 명칭은 탐라(聃羅, 耽羅)지만, 더 오래된 이름으로는 /tammura/(漱牟羅)(권상노 1994: 167)가 있다. 이 지명은 한국어로는 의미가 없지만, 일본어로는 한국어의 n > m 동화 혹은 말음 탈락을 고려했을 때 tani mura '계곡 마을' 내지는 tami mura '백성들의 마을'로 명쾌하게 분석된다. 양서의 신라어 낱말 기록 중에 健牟羅 *gjʌn *mu *la ‘성’(양서 권54.805)이 있는데, 고대 서부 일본어 mura ‘마을’(澤瀉久孝 et al. 1967: 729) 및 류큐조어 *mura ‘마을’(平山輝男 1966: 313)과 비교하여 *mula (牟羅)를 얻을 수 있다. 고대 서부 일본어 tani '계곡'은 잘 문증되는데, 일본서기 권2에서 예시를 찾을 수 있다. 고대 서부 일본어 tami '백성'은 음차 표기로는 잘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실제 그것이 tamî였는지 tamï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tam-mura에서 보이는 말음 탈락을 염두에 두면 — tani-mura '계곡마을'이 아니라 tami-mura '백성들의 마을'이라고 할 때 — 크게 중요하지는 않은 부분이다.

  • 남풍현은 이에 대해 *mura(牟羅)는 ‘마을'이라고 주장하였다(2009: 213-24).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는 고구려어 moru(牟婁)와 연관되는, 한반도 남부에서 사용되었던 낱말이다(남풍현 2009: 223). 이 등식에서 나타나는 난점은 둘째 음절의 모음에 있는데, 婁에는 상고 한어 ro, 후기 상고 한어 lio, 전기 중고 한어 lju, 현대 관화 lü 등 한어 역사상 어느 때도 비원순 저모음 /a/가 있지 않았다(Schuessler 2009: 151). 기요세(淸瀨義三郞)와 Beckwith가 내놓은 완벽하게 놀라운 해법도 말하지 않을 수 없겠다. 둘은 임시방편적인 원시한국어 *mozora로부터 신라 일본어 *mura와 중세 한국어 mozol '마을'을 이끌어냈는데, 이는 본고에서 논한 한국어사와는 반대되는 내용이다.

제주도는 분명 15세기 이전에 한국인들에게 정복당했지만, 그 일본어적 유산은 지명과 몇몇 지역어 낱말에처럼 섬에 대한 고유 명칭에 남아 있다.

4. 결론

저자는 기본적으로 한국어족은 그들이 기마술을 배운 내륙 아시아(한국 건국 신화들에서 볼 수 있듯 아마 중남부 만주일 것이다.)에서 왔을 것이라 믿는다. 많은 반대되는 주장들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언어는 한강 유역과 그 남쪽에 살던 사람들의 언어와 계통적 연관성이 없었다. 이들은 쌀을 재배하는 농경민족었는데, 칼과 창을 든 보병력으로 북쪽에서 내려온 장갑기병을 상대하기는 역부족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두 가지 선택, 곧 새로운 지배자를 받아들이든지, 혹은 수평선 너머의 섬(일본 열도)으로 이주하든지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대부분은 후자를 선택했다. 그렇지만 한반도에서 일본어족의 후퇴는 그리 빠르고 즉각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다.

이것은 또한 한국어는 원래 내륙아시아의 무기에 익숙한 기병을 가지고 한반도에 들어온, 한반도 중남부에서 일본어를 말하던 농경민족을 예속시킨 침입자의 언어였다는 가설에 힘을 실어준다.